
사랑하는 성도님들, 평안하셨습니까? 목회 현장에서 성도님들과 깊은 삶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참 많은 분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타협'이라는 덫에 걸려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처음에는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시작했던 작은 양보들이, 어느새 우리의 삶을 황량하고 암울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을 경험하게 되죠.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욥기 12장 16절에서 시작된 묵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고난 중에 있는 욥의 이야기처럼, 우리의 삶에도 예측치 못한 어려움과 고통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 고통이 외부 환경 때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선택, 특히 '타협'의 결과일 때가 있다는 아픈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는 왜 타협할까요? 그리고 그 타협은 우리 삶에 어떤 비참함을 가져올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그 자리에서 우리는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오늘 이 질문들에 대한 진솔한 답을 함께 찾아가 보기를 원합니다.
타협, 은밀한 유혹과 시작 😊
우리가 타협하는 순간은 대부분 거창하거나 극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사소하고 은밀하게 시작되죠.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보세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보다, 세상의 기준에 조금씩 맞춰가는 자신의 모습을요. 처음에는 '잘못된 무리'와 어울리는 것이 왠지 모르게 즐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맞아요, 약간의 활기와 흥분이 있습니다. '나만 고지식하게 신앙 지키는 건가?'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나도 저 무리에 속해 있구나' 하는 느낌이 어느 정도 스릴과 활력을 선사하기도 하죠. 소속감이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서 우리의 신앙적 기준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신앙의 '핵심'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주변 환경과 '약간'의 타협을 시도하는 것이죠.
피할 수 없는 결과: 황량함과 암울함 ⚠️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7). 우리가 육체(세상의 방식, 타협적인 태도)에 심으면 필연적으로 육체적인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전에 없던 고통을 겪기 시작합니다.
타협의 순간에는 즐거움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삶 속에서도 한때는 재밌어 보일 만큼의 즐거움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정말 끔찍한 현실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마음의 평안은 사라지고, 죄책감과 후회가 밀려오며, 삶은 황량하고 암울한 사막처럼 변해버리죠.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매우 비참하다"라는 말이 당신의 암울한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잘못된 무리와 어울리며 강한 신념을 밀어냈던 결과가 당신을 벼랑 끝에 서게 했을 수 있습니다. 낙담하고, 비참하게 실패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이 얼마나 끔찍한 삶인가!"라고 절규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저지른 잘못에서 비롯되는 낙담만큼 큰 낙담은 없습니다. 나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나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결과를 감내하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낙담을 불러옵니다. 목회자로서 이런 아픔을 겪는 성도님들을 볼 때 제 마음도 함께 찢어집니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서는 길 🙏
문제는 이제 충분합니다. 비참함 속에 머물러 있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너진 삶의 자리에서 다시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구체적인 제안입니다.
타협으로 인해 비참함에 빠졌다면, 이 두 가지 단계에 집중해야 합니다.
첫째, 당신의 상태를 초래한 원인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정직함입니다. 변명하거나 환경 탓을 하지 말고, 당신이 하나님의 참된 자녀로서 홀로 서지 못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타협하며 살도록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고, 그분만을 따르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다른 누군가, 세상의 가치관이나 분위기가 나의 리듬을 정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스승 되신 예수님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자꾸만 곁눈질하며 세상의 박자에 맞춰 걷는 것이죠. 주님께서는 이런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순종하지 않았다." 이 아픈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 회복의 첫걸음입니다.
둘째, 당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아니라 주님께 온전히 집중하십시오.
모든 것은 당신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비참한 상황, 망가진 관계, 실패의 결과... 이런 불리한 상황들에만 매몰되어 있으면 절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당신은 그러한 상황이 아니라 주님께 온전히 집중하도록 스스로를 훈련해야 합니다! 이것은 쉽지 않은 싸움이지만, 반드시 해야 할 영적 훈련입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절대 잊지 마십시오. 당신이 불리한 상황에만 집중한다면, 수적으로 열세에 처했을 때 홀로 설 수 없고, 시험에 들 때 당당하게 설 수 없으며, 낙담할 때 굳건히 설 수 없습니다. 당신의 눈은 반드시 주님께 고정되어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당신을 그 비참함에서 건져내시고, 다시 세우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1. 나는 지금 어떤 영역에서 세상과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시작은 무엇이었나?
2. 타협의 결과로 내 삶에 찾아온 '황량함'이나 '비참함'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3. 나의 실패나 불리한 상황 자체에 매몰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있지는 않은가?
글의 핵심 요약 📝
오늘 나눈 타협과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정리해 봅시다.
- 타협은 은밀하게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이는 신앙의 원칙에서 벗어나게 하는 위험한 시작입니다.
- 타협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가져옵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영적 원리 앞에, 타협의 결과는 결국 황량함과 비참함뿐입니다.
- 회복의 첫걸음은 인정입니다: 자신의 잘못과 나약함을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인정하는 것이 다시 서는 시작입니다.
- 회복의 핵심은 초점 이동입니다: 문제나 상황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설 수 있습니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황이 아닌 오직 주님께 시선을 고정할 때, 무너진 삶은 다시 은혜 안에서 굳건히 설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
사랑하는 성도님들, 타협의 길은 잠시의 즐거움을 줄지 모르지만, 결국 우리를 황량함과 비참함으로 이끌 뿐입니다. 하지만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상황이 아닌 오직 우리 주님께 시선을 고정할 때, 그분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이 글을 통해 하나님의 회복하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귀한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혹시 더 궁금한 점이 있거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 댓글로 함께 소통해요. 😊 주님의 크신 사랑과 평강이 성도님들의 삶에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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