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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저는 늘 여기 있었는데요...
- 탕자의 비유, 첫째 아들의 고백 - 2024년 송구영신 예배 설교
본문 : 누가복음 15:11-32
들어가며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4년의 마지막 날, 송구영신 예배의 자리에 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2024년 새해 인사를 나눈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자리에 서니, 시간의 빠름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지난 한 해, 여러분의 삶은 어떠셨습니까? 기뻤던 일, 슬펐던 일, 감사했던 일, 그리고 후회되는 일들까지, 참 많은 일들이 우리 삶을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2024년을 차분히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또 2025년 새해를 기대와 소망으로 맞이하고자 합니다.
1. 시간 도둑, 어디 갔어?! : 벌써 2025년이라고요?
여러분, 정말 시간 빠르지 않습니까? 마치 누군가 2024년을 훔쳐 가기라도 한 듯, 올해는 유난히 더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와, 벌써?" 이 말을 올해만 수백 번은 한 것 같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저와 비슷한 심정이실 거라 생각합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계획했던 일들을 다 이루신 분들도 계실 것이고, "아, 이건 좀 아쉽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예상치 못한 일들로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 수도 있고, 반대로 생각지도 못한 기쁜 일, 감사한 일을 경험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저 역시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기뻤던 일, 슬펐던 일, 감사했던 일, 후회되는 일…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2024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2025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2025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놀라운 일들을 준비하고 계실지, 벌써부터 가슴이 뜁니다. 여러분도 그러시죠?
2. "아, 그때 그러지 말걸..." : 후회 주머니, 한번 열어봅시다!
자, 이제 우리, 조금 솔직한 시간을 가져봅시다. 2024년을 잘 마무리하고, 2025년을 맞이하기 전에, 우리 마음속에 있는 그 "후회 주머니", 그거 한번 슬쩍 열어보면 어떨까요?
여러분, 다들 마음 한구석에 그런 주머니 하나씩은 갖고 계시지 않나요? "아, 2024년에 그때 그 일, 그렇게 하지 말걸..." "아, 그때 그 사람한테, 그렇게 말하지 말걸..." 하는, 후회들이 담겨 있는 그런 주머니 말입니다.
저도, 목사이지만, 그런 후회들이 있습니다. 저라고 완벽한 사람이겠습니까? "아, 내가 그때, 좀 더 열심히 할 걸...", "아, 내가 그때, 그 사람한테, 좀 더 잘해줄 걸...", "아, 내가, 왜 그 기회를 놓쳤을까..." 이런 후회들이, 제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실 이런 후회들은 우리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의 발목을 붙잡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 후회라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후회를 통해서 우리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서,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너무 자책하지는 마십시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누구나 후회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후회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발판 삼아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2024년을 보내면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그 후회들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와 위로를 구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의 후회를 선으로 바꾸어 주실 분이십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실패할 수 있지만, 실패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후회할 수 있지만, 후회 속에 갇혀 사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롭게 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3. 둘째는 신났는데, 첫째는...? : 형의 분노, 폭발 직전!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말씀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입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과 그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이야기, 여러분 모두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둘째 아들이 아닌, 그 형, 첫째 아들의 입장에서 말씀을 보려고 합니다.
누가복음 15장25절부터 32절까지의 말씀을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5:25-32 낭독)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첫째 아들은 하루 종일 밭에서 열심히 일하고, 이제 막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땀은 비 오듯 흐르고, 몸은 천근만근, 배도 고팠을 것입니다. 아마 "아, 빨리 집에 가서 씻고, 밥 먹고, 쉬고 싶다!" 이런 생각이 간절했겠죠.
그런데 집에 가까이 오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평소에는 조용하던 집에서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춤추는 소리까지 들립니다. 첫째 아들은 얼마나 황당하고 어리둥절했겠습니까?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우리 집에 무슨 잔치라도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종 하나를 불러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봅니다.
그랬더니 종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 글쎄,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주인어른께서 너무 기쁘셔서 살진 송아지를 잡고 이렇게 큰 잔치를 벌이신 겁니다!"
여러분, 이 말을 들은 첫째 아들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떠셨겠습니까? 기쁘셨겠습니까? 아니면 황당하셨겠습니까?
4. "이건 아니지!" : 모범생 형의 억울한 외침
첫째 아들은 화가 났습니다. "아니, 뭐? 그 자식이 돌아왔다고? 아버지 재산 다 말아먹고 거지꼴로 돌아온 그 녀석을 위해서 잔치를 벌였다고? 아니, 이게 말이 돼? 아니, 나는! 나는 이렇게 매일 뼈 빠지게 일만 했는데! 나한테는 염소 새끼 한 마리 잡아준 적도 없으면서!"
여러분, 첫째 아들의 이 분노, 이해가 되시죠? 저 같아도 진짜 억울하고 화가 났을 것 같습니다. "아, 아버지, 진짜 너무 하시네!"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섭섭하고, 배신감까지 느껴졌겠습니까?
첫째 아들은 정말 누가 봐도 흠잡을 데 없는 모범생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말씀에 늘 순종했고, 동생처럼 속 썩인 적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매일 성실하게 밭에 나가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마 그의 하루하루는 단조롭고 힘든 일상의 반복이었을 것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해 질 녘까지 땀 흘려 일하고, 집에 돌아와 지친 몸을 뉘이는… 그런 퍽퍽한 삶이었겠죠.
여러분, 상상해 보세요. 그렇게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온 그에게, 돌아온 동생을 위한 이 잔치는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습니까?
여러분, 이건 단순히 동생에 대한 질투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공의에 대한 문제이고, 정의에 대한 문제입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잘못한 사람은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치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어떻습니까?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은 잔치의 주인공이 되었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첫째 아들은 오히려 소외되고 억울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첫째 아들의 이 외침은 단순히 "나도 잔치하고 싶다!" "나도 송아지 잡아 달라!" 이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아버지,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버지, 정의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는, 그런 절규에 가까운 외침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때때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불공평한 상황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한테는 이런 시련이 닥치는 거지?" "왜 저 사람은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는 거지?" 하는, 그런 억울한 마음, 들 때가 있잖아요.
저도 목회를 하면서 그런 의문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공평하신 분 맞습니까?" "하나님, 정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하나님께 따져 묻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불의한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공의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우리의 눈에는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입니다.
5. "나도 신앙생활 열심히 했는데!" : 우리 안의 '첫째 아들'을 찾아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이 탕자의 비유, 그리고 이 첫째 아들의 이야기가, 단순히 먼 옛날 어느 집안에서 일어난 특별한 사건으로만 느껴지십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 마음속에 이 첫째 아들과 같은 그런 모습이 숨겨져 있지는 않습니까? 겉으로는 믿음 좋은 신앙인처럼 보이지만, 그 속마음은 불평과 불만,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차 있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하나님, 저는 주일 예배 한 번도 안 빠졌습니다. 십일조도 꼬박꼬박 다 냈고요. 교회 봉사도 누구보다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왜 저에게는 복을 안 주시는 겁니까?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잘 나가는데 저는 맨날 이 모양 이 꼴인 겁니까?"
혹시 여러분, 이런 생각 단 한 번도 안 해보셨습니까? 저도 목사지만, 솔직히 그런 생각 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저 목사인데, 왜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저 하나님 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어려운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겁니까?" 하고, 하나님께 원망 섞인 기도를 드릴 때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때때로 신앙생활을 마치 무슨 거래처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 헌신했으니까 하나님도 나에게 이만큼 보상해 주셔야 됩니다." "내가 이만큼 희생했으니까 하나님도 나에게 이만큼 복을 주셔야 됩니다." 하고, 마치 하나님과 흥정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것은 결코 올바른 신앙의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받아내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어야 하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4년을 보내고 2025년을 맞이하는 이 송구영신 예배 시간에, 우리 마음속에 있는 그 '첫째 아들'의 모습을 정직하게 들여다봅시다. 그리고 혹시라도 우리 안에 그런 불평과 불만, 시기와 질투가 있다면, 오늘 이 시간 다 하나님 앞에 내려놓읍시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런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6. 점수 따는 신앙? No! : 하나님의 사랑은 '공짜' 선물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은 마치 시험 점수를 잘 받으려는 것처럼, 하나님께 점수를 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저 이만큼 했으니까 이제 상 주셔야죠?" "저 이만큼 헌신했으니까 이제 복 주셔야죠?" 이렇게 무슨 거래하듯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수로 계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행위나 노력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공기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이 공기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공기를 돈 주고 사서 숨 쉬는 거 아니잖아요? 공기는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 얻어낸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자녀를 사랑할 때, 그 자녀가 무엇을 잘해서 사랑하십니까? 아니잖아요. 그냥 내 자녀이기 때문에, 존재 자체로 사랑하는 거잖아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우리가 시험을 100점 맞아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럼 여기 있는 우리 중에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을 겁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고, 다 부족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의 부족함을 아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그 모든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우리가 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이 사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7.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 눈 먼 첫째, 아버지 사랑을 놓치다
여러분,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이 첫째 아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는 아버지의 그 깊은 사랑을 바로 옆에 두고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치 눈앞에 엄청난 보물을 두고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 먼 사람과도 같았습니다.
누가복음 15장 31절말씀을 보면, 아버지가 첫째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여러분, 이 말씀이 얼마나 엄청난 말씀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아버지는 지금 첫째 아들에게 "네가 내 재산 다 물려받을 상속자"라고, "내 모든 것이 다 네 것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은 단순히 재산, 돈, 이런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모든 관심, 이 모든 것이 다 첫째 아들, 너의 것이라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은 이 아버지의 사랑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는 동생에게 주어진 그 잠깐의 잔치, 그 송아지 한 마리에 눈이 멀어서, 정작 자신에게 주어진 그 크고 놀라운 아버지의 사랑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늘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나한테는 아무런 보상도 없는 거지?" "나는 이렇게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는데, 왜 나한테는 이런 대접을 해주지 않는 거지?" 그는 늘 자신이 받지 못한 것에만 집중했고, 자신이 손해 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도 이 첫째 아들과 같은 모습은 아닌지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 크신 사랑과 은혜는 잊어버린 채, 마치 하나님께 받을 것만 있는 것처럼 늘 불평하고, 원망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가 다시 연결되었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권세를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을 더 달라고 떼쓰는 어린아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받은 자로서, 이제는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 사랑에 보답하는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8. 조건 없는 사랑 : 하나님의 자녀, 그 자체로 충분한 이유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 혹은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는, 아가페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냥 그 자체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가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더 사랑하고,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덜 사랑하고, 그러십니까? 아니잖아요. 그냥 내 자녀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거잖아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죄를 짓고,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할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우리는 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냥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이 놀라운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기준에 얽매여 살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 세상이 말하는 행복, 이런 것들에 목매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놀라운 신분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제는 세상의 기준에 따라 우리의 가치를 매기지 맙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지 맙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갑시다.
9. 2025년, 은혜의 잔치로! : 섭섭함, 미움, 다 내려놓고 뛰어들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곧 2025년 새해가 밝아옵니다. 2024년을 보내면서, 혹시 우리 마음속에 아직도 씻겨지지 않은 섭섭함, 불평, 미움, 이런 찌꺼기들이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런 것들이 있다면, 2024년과 함께 다 떠나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제 훌훌 털어버리고, 새 마음 새 뜻으로 2025년을 맞이합시다!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잔치를 이미 벌여 놓으셨습니다. 잔치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음악은 울려 퍼지고, 맛있는 음식은 준비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기쁨으로 춤추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은혜의 잔치를 이미 베풀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를 그 잔치에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여전히 과거의 상처와 아픔에 붙잡혀 있다면, 그 은혜의 잔치에 온전히 참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잔치 집에 가서 "나는 저 사람이 싫어서 기분이 안 좋아." "나는 저 음식이 마음에 안 들어서 먹기 싫어." 이렇게 불평, 불만만 늘어놓는다면, 그 잔치를 제대로 즐길 수 있겠습니까? 아니잖아요. 잔치인데,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거잖아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5년에는 우리,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그 은혜의 잔치에 마음껏 뛰어들어 봅시다! 과거의 모든 아픔과 상처, 미움, 섭섭함, 이런 것들은 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오직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갑시다.
2025년에는 우리 서로 더 사랑하고, 서로 더 용서하고, 서로 더 격려하며 살아갑시다. 가족들에게 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고, 이웃들에게 더 친절한 행동을 보여 줍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는, 그런 복된 한 해를 만들어 갑시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들을 이루실 것입니다. 2025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큰 은혜를 부어 주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지 않으십니까? 저는 정말 기대가 됩니다! 여러분도 기대되시죠?
자, 이제 우리 모두 기대하는 마음으로 2025년을 맞이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10. 통성기도 : 주여! 우리를 새롭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첫째 아들의 모습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의 옹졸함, 우리의 불평, 우리의 시기와 질투, 우리의 섭섭함, 이 모든 죄악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 무슨 자격이 있어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한없는 은혜로 우리를 사랑하셨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이제 새해가 밝아옵니다. 2025년에는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어두운 그림자들을 다 몰아내 주시고, 오직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워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우리를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주의 은혜로 충만하게 채워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가 주님의 그 사랑을 온전히 깨닫게 하시고, 그 사랑에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2025년에는 우리 가정이 주님의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시고, 우리 교회가 주님의 은혜로 부흥하게 하시며, 이 나라와 이 민족이 주님의 공의와 정의로 새롭게 되게 하옵소서!
(다 함께) 주여! 주여! 주여!
주님, 우리가 2024년을 돌아보며 회개할 것들을 회개하게 하시고, 주님, 2025년을 맞이하며 새로운 결단을 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삶을 주님께 온전히 맡겨 드립니다. 주님,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를 통하여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다 함께, 더욱 뜨겁게) 주여! 주여! 주여!
(개인 기도 시간을 허락하며) (잠시 침묵 후, 약간 조용한 목소리로) 이제, 각자 하나님께 개인적인 기도 제목을 아뢰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마무리 기도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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