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2:3–6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오늘 본문 마태복음 12장 3-6절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적 시각을 넘어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가르치시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보고 율법을 어겼다고 비난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다윗이 피치 못할 상황에서 제사장 외에는 먹을 수 없는 떡을 먹었던 일과, 안식일에도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일을 하는 것이 허용되었던 구약의 사례를 들어 반박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예시는 단순히 율법의 문자를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문자에 갇혀 형식만을 중요시하는 바리새인들의 태도를 지적하시며, 긴급한 필요 앞에서는 율법의 정신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셨습니다. 다윗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절박한 상황에서 거룩한 떡을 먹었지만 정죄받지 않았습니다. 또한 제사장들은 안식일에도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봉사하며 일을 했지만, 이는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며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당신이야말로 율법의 완성자이시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분이심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도 모르게 율법의 문자에 갇혀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율법의 문자를 넘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릴 것을 요구하십니다. 사랑과 자비,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율법의 본질임을 산상수훈을 통해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단순히 성경 구절을 암송하거나 예배에 참석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고, 정의를 실천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거나, 마음의 어려움을 겪는 이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어쩌면 율법의 형식적인 준수보다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일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모든 율법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완성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율법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뜻을 헤아리며 그 뜻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자 너머를 바라보는 지혜
우리는 때때로 성경의 특정 구절이나 교리, 혹은 교회의 전통이라는 틀에 갇혀 하나님의 참된 마음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율법의 문자에만 집중하여 그 뒤에 숨겨진 사랑과 자비의 정신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예시와 제사장들의 안식일 봉사를 통해 율법이 결코 인간을 억압하거나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오히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하며, 이웃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기 위한 지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지침의 목적을 잊고, 형식적인 준수에만 매달리는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단순히 지식의 보고나 행위의 규범으로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문자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 음성은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고, 용서를 가르치며, 섬김의 삶을 권면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뜻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때, 우리의 신앙은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질 것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넘어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주 하나님, 당신의 사역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에 대해 읽을 성경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경에서 단순한 규칙이 아닌 당신의 뜻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버지, 당신이 제게 바라시는 것을 아는 것 이상으로, 그 뜻을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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