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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al letter/믿음의 단상

섬기는 훈련

by 최영덕목사 2004.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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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쫓겨 갔을 때 제일 먼저 변화된 모습을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 아비의 양무리에게 먹이려 하는데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무리에게 먹이니라”(출 2:17)고 기록하고 있다. 왕궁에서 섬김을 받던 모세가 광야에서 무명의 존재가 되어 양무리를 섬기고 있는 모습이다. 광야 학교는 섬김의 훈련장이다. 섬김을 받기만 하고 살았던 그가 섬기는 위치로 변화된 곳이 광야였다. 모세는 무릎을 꿇고 양무리를 먹이는 낮은 위치로 내려 온 것이다. 스티븐 옥포드는 “그리스도인의 리더십이란 꿇은 무릎, 젖은 눈, 깨어진 심장에 있다.”라고 말했다. 모세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섬기고 기도하기 위해 꿇은 무릎, 자신의 죄와 백성의 죄를 위해 회개하는 젖은 눈, 그리고 그들을 위해 중보하는 깨어진 심장이었다. 광야에서 모세는 섬기는 지도자로 성숙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받드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종의 형체를 입으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분명했다. 예수님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삶의 표지는 요한복음 13장에 나오는 수건과 대야에서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종이 되어 그들의 발을 씻겨 주셨다. 예수님의 가장 고귀한 모습은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모습에서 볼 수 있다.

인간은 섬기는 것보다는 섬김 받기를 좋아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주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는 야고보와 요한의 말을 듣고 있던 열 제자의 모습을 성경은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막 10:41)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실 열 두 제자 모두가 종이 되기 보다는 섬김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했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34, 35)고 말씀했다.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되기 위해서는 이웃을 위해 자신이 죽어야 한다. 이웃의 과거와 허물로부터 내 자신이 죽지 않으면 이웃을 진정으로 섬길 수가 없다. 우리가 이웃을 섬기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과거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섬기는 종이 되기 위해서는 매일 이웃을 위해 죽고, 이웃을 만날 때 마다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섬겨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매일 태어나듯, 이웃들도 우리 가슴에서 매일 새롭게 탄생시켜야 한다. 그때 우리는 쓴뿌리가 없이 그들을 섬길 수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겠는가? 가장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위대하고, 큰 일을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작은 일을 크게 생각하신다. 예수님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마 25:40)고 말씀했다. 작은 소자를 섬길 때 우리는 예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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